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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과 김병기 교수, 화제작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홍보부 | 2005-05-31 | 조회 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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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대왕비문 변조 주장, 각계 관심 불러 일으켜 -
우리 대학 중어중문학과 김병기 교수가 광개토대왕 비문의 조작의혹을 서예학적으로 입증하는 저서 ‘사리진 비문을 찾아서’(학고재)를 출간했다.
저서 출간에 앞서 각종 논문 발표를 통해서 광개토대왕 비문의 조작의혹을 꾸준히 주장해온 김병기 교수는 저서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에서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글자의 원래 글자를 복원하는 등 실증적 입증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각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문 글씨체의 비교검토를 통해 일제의 광개토대왕비 변조가능성을 추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주 길림성 집안현 통구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우는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비문이 조작되었다는 변조설이 끊이지 않았다.
광개토대왕 비문 중 중 현재 ‘도·해·파’(渡·海·破)로 알려진 부분은 자형과 필획 등 서예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입·공·우’(入·貢·于)를 변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김교수의 주장이다. ‘도·해·파’(渡·海·破)로 알려진 부분을 ‘입·공·우’(入·貢·于)로 바꾸게 되면 뜻은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부수어 (일본의) 신민으로 삼았다”에서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와 신라에 대해 조공을 들이기 시작하므로 (고구려는) 왜도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뜻이 된다.
김병기 교수는 1982년 대만의 한 책방에서 광개토대왕 비문 탁본집인 ‘호태왕각석’이란 책을 찾은 후 글자의 모양에 반해 여러차례 임서하면서 다른 글씨체와 ‘도·해·파’(渡·海·破)부문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 증거로 1880년대 일본은 중국 명나라때 쓰던 해서체를 인쇄활자로 썼는데 세 글자는 해서체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며 조작한 것으로 의심받는 탁본인 사코본에서 세 글자가 다른 비문의 장법과 어긋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김병기 교수는 20여년간 비문연구에 매달려 이러한 연구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 주장이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시달리고 있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광개토대왕비와 역사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한국일보>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505/h2005052419170723400.htm
<동아일보>http://www.donga.com/fbin/output?sfrm=2&n=200505280179
우리 대학 중어중문학과 김병기 교수가 광개토대왕 비문의 조작의혹을 서예학적으로 입증하는 저서 ‘사리진 비문을 찾아서’(학고재)를 출간했다.
저서 출간에 앞서 각종 논문 발표를 통해서 광개토대왕 비문의 조작의혹을 꾸준히 주장해온 김병기 교수는 저서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에서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글자의 원래 글자를 복원하는 등 실증적 입증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각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문 글씨체의 비교검토를 통해 일제의 광개토대왕비 변조가능성을 추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주 길림성 집안현 통구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우는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비문이 조작되었다는 변조설이 끊이지 않았다.
광개토대왕 비문 중 중 현재 ‘도·해·파’(渡·海·破)로 알려진 부분은 자형과 필획 등 서예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입·공·우’(入·貢·于)를 변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김교수의 주장이다. ‘도·해·파’(渡·海·破)로 알려진 부분을 ‘입·공·우’(入·貢·于)로 바꾸게 되면 뜻은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부수어 (일본의) 신민으로 삼았다”에서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와 신라에 대해 조공을 들이기 시작하므로 (고구려는) 왜도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뜻이 된다.
김병기 교수는 1982년 대만의 한 책방에서 광개토대왕 비문 탁본집인 ‘호태왕각석’이란 책을 찾은 후 글자의 모양에 반해 여러차례 임서하면서 다른 글씨체와 ‘도·해·파’(渡·海·破)부문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 증거로 1880년대 일본은 중국 명나라때 쓰던 해서체를 인쇄활자로 썼는데 세 글자는 해서체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며 조작한 것으로 의심받는 탁본인 사코본에서 세 글자가 다른 비문의 장법과 어긋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김병기 교수는 20여년간 비문연구에 매달려 이러한 연구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 주장이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시달리고 있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광개토대왕비와 역사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한국일보>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505/h2005052419170723400.htm
<동아일보>http://www.donga.com/fbin/output?sfrm=2&n=20050528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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